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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보고서에서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통하여 중범위 수준(meso level)의 업종별 노사관계 연구가 축적되어야 고용관계와 노동시장의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하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인 자동차산업을 분석하였다. 자동차산업은 특히 도급구조를 통하여 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용관계의 계층성에 대한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여기서 도급구조는 사내와 사외를 모두 포괄하는데, 전통적인 부품조달체계와 관련된 것이 사외도급관계라면 최근 수년간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비정규직 차별은 사내도급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 연구가 시급한 것은 여러 완성차업체의 지난 수년간 임단협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노사 갈등의 쟁점이 되어 있는 상황이며, 사외 도급의 지불능력 격차 발생과 그에 따른 임금격차 문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노동조합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노사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급구조 전체를 고용관계와 결부지어 연구한 것은 아직까지 제출되지 않아 업종 단위의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작업으로 판단하였다.
이 연구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기업간 네트워크 및 도급구조에 관한 이론, 분단노동시장 이론, 그리고 고용관계의 일반 이론 등 여러 학문으로부터 이론과 방법론을 차용하였다. 기업간 고용관계의 격차는 기업별 고용관계의 역사와 관행이라는 토양 위에서 기업간 지불능력 격차가 확대되고 기업별 노조가 이를 방조함으로써, 혹은 저지에 실패함으로써 확대된다. 그런데 이러한 산업 단위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구조변화는 독립적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자동차산업내 도급구조라는 기업간 네트워크의 변화에 의하여 추동된다. 또한 도급구조와 고용관계의 계층화는 보다 넓게는 외환위기 이후 일반경제 시스템의 변화, 전국적?업종별 노사관계의 분산성, 그리고 노동시장의 분단성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또 자동차산업의 국민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러한 외부 환경에 피드백되면서 구조화된다. 이 모든 변화에 대하여 정부의 각종 정책이 역시 중요한 환경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이론을 토대로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가 고용관계의 계층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기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정성적인 방법과 정량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하였다. 이는 현장의 실태를 감안하지 않고 정량적인 방법만으로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업체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도급구조와 고용형태를 올바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장실태조사와 문헌분석만으로는 일반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량적인 분석으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는 애초에 학제간 연구를 통하여 업종의 노동 문제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목적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방법론에 의하여 중범위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또한 업종 단위 노동문제의 연구는 산업과 경제에 관한 논의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확인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고도 경제성장의 주역이기도 하였지만,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으로 인하여 외환위기를 맞게 된 중요한 요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제 외환위기를 경과하면서 구조재편을 거의 마무리함으로써 새롭게 도약의 기회를 잡고 있기도 하며, 선도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여 경쟁력의 시험대라 불리는 미국시장에서도 성가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구조 재편은 일반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는 데,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지는 등 기업경영의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수익성 역시 크게 제고되었다. 그러나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투자 자금 조달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중소 부품업체들조차도 내부자금으로 각종 투자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에서 확인되었다. 설비투자 측면에서 완성차기업은 여전히 생산능력 과잉을 안고 있기 때문에 국내 투자에 대하여 매우 소극적이며, 합리화투자 등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호황기업들의 경우 가동률이 정상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설비능력 증강에 대해 주저하고 있는 것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해외공장을 잇따라 건설하고 있는 것은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고용창출력 저하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또한 장기 성장잠재력을 보여주는 연구개발투자에 있어서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떨어져서, 직접금융시장과 내부자금 조달 위주의 금융시스템 변화와 수익성 최우선의 경영행태 변화가 기존 설비의 최대한 활용을 통한 단기적인 이익극대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는 부가가치 구성에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하여 경상이익 비중이 크게 증가한 것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단기 이익극대화의 압력은 기존의 도급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완성차업체의 제조원가는 최대한 억제되었으며, 이것은 관행적으로 ‘단가인하’와 ‘임률고정’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도급구조 자체는 전속적 단층거래가 복수업체에 대한 중층거래로 변모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형태의 계열사 거래 중심주의와 모듈화, 플랫폼통합 등의 와중에서 사활을 건 수주경쟁이 부품업체들간의 생산성과 품질 경쟁을 강화하고 다시 2차, 3차 부품업체로 부담을 전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복수품목 발주의 증가와 부품의 독자적 수출 증대, 외자기업의 진출 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자동차부품산업이 여전히 수직적 계열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업간 네트워크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며,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특성이 유지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도급구조의 수직적 특성의 유지, 혹은 오히려 강화된 측면 속에서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반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부가가치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던 부품업체들로 하여금 인건비의 절감에 사력을 다하도록 하였다. 결국 완성차업체에서만 존재하던 사내도급이라는 형태의 비정규직 활용을 1차와 2차부품업체들도 채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감소하는데, 100인 미만의 고용비중은 증가하는 양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즉 완성차업체의 모듈화뿐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의 외주화 증가는 노동시장의 최하층으로 작업량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산업 전체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줄이는 것과 함께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산업 전체의 생산성은 한 수준 높아졌으나 이 과정에서 총고용량은 줄어들었으며, 더욱이 그 내부에서 계층화는 한층 심화되었다. 이러한 고용구조의 변화는 사용자들이 정규직 고용에 대해서는 안정성을 보장하면서 비정규직 고용으로 양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에 의하여 강화되었다. 아울러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로 분산된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사용자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거나, 저지에 실패함으로써 고용구조의 계층화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고용구조의 계층화와 최하층으로의 집적은 부문간?규모간 임금격차와 상호 작용해 왔다. 완성차업체는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이나 피용자보수율이 떨어져 지불능력으로만 본다면 더 많은 임금을 줄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불능력이 취약한 하도급 업체들도 이윤을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경제 환경 하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인건비나 노무비의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자동차산업 내에서 총임금격차와 순임금격차가 모두 확대된 것으로 귀결되었다. 아울러 정확히 계측되지는 않지만 기업간 복지격차 역시 크게 확대된 것으로 추론되었다.
요컨대 사내와 사외 도급, 이 둘의 결합에 의하여 고용과 임금 측면에서 여러 개로 분절된 노동시장이 존재하게 되었다. 동심원으로 표현하자면 완성차 정규직이 가장 중심에 존재하면서 도급관계의 양방향으로의 확대에 따라 외부의 근로자들이 주변화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특히 그 말단에는 최저임금제의 적용을 받는 한계근로자들까지 네트워크에 포괄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자동차산업 평균으로는 제조업보다 임금 수준이 높으면서도 자동차산업의 100인 미만 기업의 임금이 제조업의 같은 규모 기업의 임금보다도 낮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도급구조의 심화와 확대 속에서 그 부담은 노동시장의 최하층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급구조의 기업간 네트워크 내에서 인적자원관리와 노사관계는 기업별로 매우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으며,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들은 채용-승진-퇴직에 이르는 일관되고 체계화된 인력관리를 하고 있지 못하며, 경기순환이나 구조조정에 대하여 주로 양적 유연성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용 측면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 이외에 근로시간을 조정하고, 임금의 구성이 복잡하여 변동급여와 특별급여의 조절을 통하여 비용의 탄력성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기능적 유연성을 활용하는 중소기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그 비중은 적은 편이며, 그것이 체계적인 대응인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직무와 직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곤란한 상황과 교육훈련 체계가 미발달한 것과 결합되면서 경직적인 연공급 체계의 부담을 결국 외부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술체계와 작업조직 측면에서 근로자들의 숙련을 활용하기보다는 기계를 중심에 둔 노동배제적 자동화가 기본적인 전략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적자원관리상의 근로자 포섭 실패와 질적 유연성 결여는 어째서 최상층인 완성차 정규직조차도 사용자에 대하여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단체행동에 적극 참여하는가를 설명해 준다. 즉 외부의 2차 노동시장으로 떨어질 위험이 상존하는 가운데 자본은 해외로 이동하고 있으며,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근로와 소외된 노동과정은 ‘일의 보람’과 ‘생활의 즐거움’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업장 규제를 통하여 더 편한 일을 좇고 경제적 보상으로 노동의 피폐함을 보상받으려는 동기가 작용하게 되며, 작업장내 교섭력에서 밀려 고임금과 인력운영의 경직성에 직면한 사용자는 도급구조를 통하여 그 부담을 외부화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 정점의 이러한 노사 전략과 관행은 하부로 그대로 모방·전파되어 왔다.
노동조합운동은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한편, 완성차 정규직 노조가 사내도급 근로자에 대하여 대리교섭을 수행하여 근로조건을 크게 개선시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 단위의 파편화된 조직과 교섭이 지배적이며, 따라서 상급단체의 통일되고 강한 지도력으로 근로자간 격차를 완화하려는 전략과 실천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업장 내에서도 노동과정의 내용을 충실화하거나 숙련을 향상시키는 것에 의하여 ‘노동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며, 여전히 ‘자본’을 타격하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전통에 머물면서 민주성의 이름으로 경제적 실리주의와 결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날로 심화되는 근로조건 격차는 산별노조와 연대 행동의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 점점 더 파편화된 조직으로 왜소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자동차산업의 도급구조하에서 근로자들간의 고용 및 임금조건이 층화되는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장 사회적 통합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분단 노동시장을 더욱 강화하는 경제 전체에 대한 외부성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외부성은 소득분배의 악화라는 외환위기 이후의 일반적 현상 속에서 2003년에 한국 경제 전체의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수요의 부진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자동차 내수 판매가 크게 줄어드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또한 단기 이익극대화의 압력 속에서 투자 역시 위축되고 있는 것도 경제 침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경우에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집착한 결과가 동태적 효율성과 경제의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산별 교섭을 통하여 이러한 자동차업종 고용관계의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결국 지금 당장 특단의 대책을 필요로 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업종별?지역별 노사정협의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업종 단위의 노사정 협의를 활성화하면서 완성차 노조가 사내도급 근로자에 대하여 대리교섭을 수행해 왔듯이, 사외도급 근로자에 대하여 연대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현실적인 추진력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업종별?지역별 노사정협의회가 다루어야 할 의제로서 본 보고서에서는 산업정책, 공정거래정책, 금융정책, 복지정책 등에 대한 참여를 통한 수평적 네트워크로의 도급구조 전환, 임금 및 복지 격차의 축소를 위한 임금인상률의 기업간 조율 및 평준화 기금 도입, 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나누기 (worksharing), 산업 특수적 숙련을 매개로 한 업종 단위의 채용-승진-퇴직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시스템 구축, 직무급 임금체계와 일시해고-재소환(layoff-recall) 제도를 전제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 그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업복지의 사회복지로의 전환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사회 책임경영을 기조로 산업 전략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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